어떤 이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한 노부부의 평화, 오후 네시부터 시작되는 악몽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만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 中
약 40년동안 고등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친 강사 에밀과 그의 아내 쥘리에트는,
외딴 시골 마을에서 결혼 이후 꿈꿔왔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창문 너머의 외로운 풍경, 벽난로, 그리고 그 앞에서 침묵을 즐기는 에밀과 쥘리에트까지.
에밀과 쥘리에트에게 <우리집>에서 사는 일주일은 정말 완벽했다.
그 다음날, 정확히 오후 네 시에 찾아온 이웃집 남자의 방문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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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인용된 첫 구절처럼 우리는 서로의 몰이해를 넘어서서,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난 인간들의 풀 수 없는 숙제,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해 계속 생각했었다.
그럴 때, 매우 적절한 타이밍에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가 내 삶의 문을 두드렸다.
책에서도, 결국은 깔끔한 해석 없이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인은 심지어 지옥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
작품의 중후반부에서, 주인공은 정의를 스스로 판단하며 그 곳에 자아를 욱여넣는 듯,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이웃집 남자와 함께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작품의 마지막에 나오는 묘사는 나를 절망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 中
내가 날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다른 존재로 예고없이 탈바꿈하는 존재라면 어떨까.
어쩌면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여전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가 없다. 아멜리 노통브의 신선한 자극을 여기서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어떤 인간일까.
나는 내 삶을 사랑하긴 할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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