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떠나가자
떠나가자
2023.11.12왜, 떠나질 못하는지 시간의 흐름이 마치 바람과 같아서 미처 몰랐다. 무심하게 바람결만 느끼고 있기엔 여름은 잎을 잃어 추위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동안의 짐은 다 덜어내고 이젠, 떠나가자. 잊혀진 여름의 추억처럼 떠나는 건 어렵지만 이젠 떠나가자, 저 바람을 따라
단 한 가지 위로
단 한 가지 위로
2023.11.02평등한 세상은 유토피아의 전유물이다. 가면 갈수록 견고해지고 첨예해지는, 우리를 향한 평가와 비판 말이다. 그것들은 평등이란 단어와 전혀 다른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침몰되어 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으로 발버둥친다. 1등과 꼴등. 우등생과 열등생. 전교 학생회장과 평범한 학생. 비등기임원과 등기임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차이, 갈등, 대조, 대비, 비교, 비량, 사조의 세상에서 매일매일, 우리는 적절한 등급을 시험하고 판단한다. 우리는 늘 주관적인 삶에 객관적인 등급을 부여한다. 근데. 괜찮다고? 뭐가 괜찮은 건가? 잘 짜여진 판 위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생쥐 꼴을 한 내가. 뭐가..
쉬는 법
쉬는 법
2023.10.231 새벽 4시. 길거리엔 킥보드가 또르르, 굴러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막 학과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벼락치기에 가까운 공부법(기행)을 선보이는 나는. 이럴 때마다 ‘편하게 쉬는 법’을 잊곤 한다. 학교를 조금 지나치면 이따금씩 축 처진 가방을 멘 학생 몇 명과, 눈에 불을 켠 채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 몇 대가 보인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해서 킥보드의 속도를 늦출 때, 일사불란하게 발을 맞춰 무거운 봉투들을 큰 트럭에 던지며 수거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을 경쟁의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이 고통스러운 파노라마는 내 생각엔 옳았기 때문이다. 사이클을 더 열심히, 더 길게, 더 부지런히 돌렸다는 안도감과 뿌듯함..
마인드버그
마인드버그
2023.10.23“씨발. 좆같네.“ 그러고는 간간히 들리는 웃음소리. 아무렇지 않게 욕과 웃음을 같이 내뱉는 모습이 왠지 익숙했다. 오후 7시.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집에서 나왔다. 재즈 플레이리스트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바로 귀 옆에서 흘렀다. 그래선지 불협화음을 곧바로 들을 수 있었다. 한 고깃집 앞에서 중년 두명 정도가 한탄하는 소리였다. 담배연기는 그 입을 타고 하늘까지 올라갔다. 연기는 조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금세 눈 앞에서 사라진다. 언젠간 우리 중에 섞여 행방조차 시작조차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잠시 온데간데 흩어져버린 연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나는 대학 정문에 도착했다. 주말의 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사람의 감각은 실로 대단하다. 나는 도시 속의 협주곡에서도 그러한 불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