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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 4시.

 

길거리엔 킥보드가 또르르, 굴러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막 학과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벼락치기에 가까운 공부법(기행)을 선보이는 나는. 이럴 때마다 ‘편하게 쉬는 법’을 잊곤 한다.

 

학교를 조금 지나치면 이따금씩 축 처진 가방을 멘 학생 몇 명과, 눈에 불을 켠 채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 몇 대가 보인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해서 킥보드의 속도를 늦출 때, 일사불란하게 발을 맞춰 무거운 봉투들을 큰 트럭에 던지며 수거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을 경쟁의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이 고통스러운 파노라마는 내 생각엔 옳았기 때문이다. 사이클을 더 열심히, 더 길게, 더 부지런히 돌렸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은 쉴 때의 쾌락만큼이나 달콤했다. 그만큼 내 삶을 효과적이고 진취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듯해서, 괜스레 우월감에 젖어들기도 했다.

 

 

 

2

 

새벽 5시.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기계처럼 한 글자 한 글자를 착실하게 처리해내던 눈이 눈꺼풀과 한참을 맞닿고 있으면, 두꺼운 전공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이 물밀듯 몰려온다.

 

‘쉬는 법’. 나에게 사치스런 질문도 그 곳에 있었다. 복수전공생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지금, 나는 나에게 매서운 채찍을 휘두르며 갖가지 휴식으로부터 스스로를 멀리하고 있었다. 내 생각으론, 그게 옳았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침대가 점점 깊어질수록 나는 그만큼의 초조함에 둘러쌓인 채 신음했다.

내일은 이 과목 전체를 마무리해야지. 내일 모레는 과제를 해야지. 그 다음날엔 레포트를 마저 작성해야지. 운동도 가야 하고… 기타 등등. 자유롭게 강을 노닐던 생각은 물귀신에게 발이 잡혀버린 채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생각을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게 됐을 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쉬는 법’을 어느새 잊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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