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퍼져나갈 것만 같은 노을이 다시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내 앞에 마주보고 있다.

창문의 언저리에서 바라보고 있던 나, 그리고 그 뒤로는 점점 길어지는 노을만큼의 깊어지는 그림자를 뒤꽁무니에 단 채

창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 시간대가 되면 낡은 반지하의 방 안에도 아무렇지 않게, 붉게 달아오른 햇빛이 어김없이 방문한다.

항상 그럴 때마다 나는 그닥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해야만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일 집 안을 드나드는 노을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일매일 아름다웠다.

창문의 건너로 적당한 거리, 태양을 감싸고 있는 조그마한 구름들을 관찰했다.

그것은 속절없이 노을에게 난도질당한 자국의 사이로 붉은 피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인지 슬퍼졌다.

아주 가끔씩, 노을을 보면 가슴팍이 시큰해진다. 노을은 나의 코 앞에 존재하면서도 사실 그 무엇보다 멀리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난 대기권을 뚫고, 구름마저 걷어내버리고, 그저 모든 것을 덜어버리고 아름다움만을 유음한 노을에 양양히 매료되었을 뿐이었다.

노을이 태어나 이 땅에 그득히 닿기 전, 우주에서 갈피 잃은 채 방황하던 태생을 알 도리가, 알 의향조차 없으니.

 

나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반지하의 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뚱이에 옷을 약간 걸치고, 가방에 항상 들어있던 것들을 주섬주섬 덜어내어 주변의 무언가를 담기 시작했고, 빛바랜 스니커즈에 조금 큰 발끝을 어렵사리 구겨넣었다. 그렇게 필사적인 발버둥을 치면서도 등이 자꾸만 간지러웠다. 무르익은 노을을 뒤로 한 채 문을 넘어서, 노을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세상은 온통 붉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집을 나서면 항상 보이던 작은 편의점도, 큰 도로 옆으로 정갈하게 세워진 큰 빌딩들도, 큰 도로를 지나 건너편 도보로 가기 위한 기다림과 그 기다림을 자처하는 군중들도, 모두 피에 절여진 듯 눈과 코와 입과 손과 가슴에 붉은 무언가에 그려지고 있었다. 이 이후로도, 내가 가는 곳엔 항상 노을이 있었다.

 

어김없이. 너무나도 보편적인 진실. 그리고 국부적인 거짓이었다. 

 

이내 발걸음을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저 멀리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 멈춤과 동작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필사적인 도망과 진실의 당도 사이에 나를 세워놓았다.

빨강과 검정 사이의 붉음을 가진 노을처럼.

여전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세상의 사이에 서있다.

또한 세상의 끝과 또 다른 끝에 서있다.

노을은 누구보다 멀리에 있는 것이지만, 나와 제일 맞닿아 있기도 했다.

나는 하나의 세상을 살면서 동시에 두 개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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