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별세하셨다고 들은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점점 밀려드는 업무에 정신없는 나날을 헤쳐나갈 때, 경찰서에서 오는 전화를 받을 여념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겨우 업무를 끝내고 소파에 누워 담배 한 대를 꺼낼 즈음 두 번째 전화가 울렸다. 스피커 너머의 남자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니는 외로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간단히 대답만 건네는 내 입에선 매연이 피어올랐다. 남자는 내가 해야 할 간단한 절차 등을 서술했고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집 밖을 거닐고 있었다. 근처의 가까운 벤치를 찾아 멍하니 앞을 쳐다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긴 시간을 홀로 보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그만큼의 침묵을 몰래 약속했었던 나에게도 알 수 없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는 당최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아주 조금의, 사사로운 감정을 내비칠 때에도 그녀는 괴로워했다. 어머니의 손에 자라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저 고집이 센 사람인 줄 알았다. 나도 머리가 커가면서, 어머니는 단순한 성격이 아닌 어떠한 신념에 종속된 행동이란 걸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에게 나는 불가해한 세계였다. 한 때는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에 당연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십여 년 전,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남자친구가 이별한 직후 협박 문자에 시달렸다는 걸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서로를 위한 것이었다. 

 

“어머니. 이젠 괜찮아요. 그만해도 돼.”

 

내가 성인이 됐을 무렵, 나는 침묵을 깨고 다가서기로 했다. 쉽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착실하게 쌓아온 벽 뒤의 그림자에 은밀히 숨었다. 나를 향한 커다란 애정과 어머니라는 인생에 가려진 그림자는 큰 교집합을 이루었다. 내가 움직이면 어머니의 세계도 크게 흔들렸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을 수차례 드나들었고, 이내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로 빠르게 쇠약해져갔다. 하지만 어머니의 텅 빈 동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서 떠나가는 데 최선을 다했다.

 

 

 

칙-

 

하늘은 여전히 가라앉은 별들이 반짝였다. 담배를 문 채 먹구름을 바라보던 내 옆으로, 검은 정장 차림을 입은 남자가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흡연실 너머 주차장에 검은 리무진과 승용차 서너 대가 주차돼 있었고, 그 옆으로 듬성듬성 검은 사람들이 오갔다. 나는 고개를 잠시 떨군 채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개인적으로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남자는 갈색 봉투를 의자에 고이 두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한동안 의자에 외로이 남아있었다. 곧 내가 신었던 구두가 날 이끌고 텅 빈 주차장을 거닐게 만들었다. 봉투는 약한 바람에 날아갈 듯 휘청이면서도 손에 꽉 매달려 있었다. 엄마의 끝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엄마의 끝과 함께했을까. 봉투 안의 물건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금 마음 한 켠이 시큰해졌다. 눈물을 흘리기엔 마음이 눈물샘을 꽉 휘어잡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손의 끝마디에서만 맴돌던 봉투는 열지 못했다. 

 

그 안은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 그녀의 물건이 들어있지 않을 테니까. 사실 그때의 나는 침묵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깨부수었을지도.

 

난 외로이 죽어버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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