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은 진작 지나친 듯한 깊은 밤이었다. 술집 거리의 경계선 즈음에 자리 잡은 한 라운지 바에서, 달큰하고 진득한 향이 바람을 타고 출입문 너머까지 퍼져나갔다. 꽤 잡스러웠던 소음들도 일렬로 길게 늘어진 테이블에서 출입문으로 사람들과 함께 사그라들고, 그림자를 한 꺼풀 벗어낸 로파이 재즈음악이 흘러나왔다. 가게의 벽면 통유리창 너머엔 홀로 선 가로등이 쉬지 않고 점멸하며 빛났다. 가늘게 들어오는 빛에 의존해 바 테이블의 끝자락에 앉은 수영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을 뒤로 젖히며, 절반 정도 채워진 술잔을 낮은 높이에서 천천히 두어 번 휘저었다. 그러자 다시금 올라오는 달큰한 향이 수영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상기인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오나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는 거리가 멀어……’

 

수영은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아도 바뀌지 않던 문장을 잠시 훔쳐보곤 이내 못 본 척 외면했다. 꾸역꾸역 술잔을 넘겨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내 휘청거리는 손이 스마트폰을 향했다. 스마트폰 속의 문자 내역을 지우자, 방금 수영이 지운 문자와 같은 내용의 문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오와 열을 맞춘 채 화면에 차례로 등장했다. 수영은 문득 드라마 속의 장면처럼 꼴도 보기 싫은 스마트폰을 확 던져버릴까, 하고 입을 씰룩대다 곧 그만두기로 했다. 얘는 아무 죄가 없어……비싼 아이잖아…….라며 중얼거리던 수영은 무의식적으로 코트 주머니의 무언가를 만지작대더니,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위를 기웃거렸다.

 

“계산하실 건가요?”

 

바 테이블 건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수영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남자는 새하얀 셔츠를 입고, 셔츠의 소매 위로 단정히 개어진 바텐더 유니폼을 걸어둔 채 어딘가로 옮기고 있었다. 셔츠 포켓에 달린 검은 명찰에 ‘지욱’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가 지친 낯빛으로 수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욱과 눈이 마주친 수영은 여전히 코트 속의 무언가를 적잖이 매만지고 있는 중이다.

 

“아뇨……. 혹시 여기 흡연실이 어디에 있나요?”

 

수영은 왠지 모르게 어색해졌는지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욱의 뒤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야각에서 시계를 확인한 수영은 다시 와서 계산하는 행위가 가뜩 귀찮아졌고. 짧은 고민을 마친 수영은 계산하기 위해 자리에 있던 파우치로 발끝을 치켜세웠다.

 

“안에서 편하게 피우고 가세요.”

 

지욱이 다시금 운을 띄웠다. 수영은 가게 안이 고요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가게 안은 마감 시간이 다 된 연유인지 그새 손님들은 빠져나가고 지욱과 수영, 그리고 가로등의 미약한 빛줄기만이 얇게 퍼져있었다. 수영은 긍정의 제스처를 비췄으나 조금 미심쩍은 마음을 숨기며 자리로 돌아왔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쥔 채. 평균 여성의 손안에 쏙 들어갈 만한 작은 사이즈의 전자담배였다. 수영은 전자담배의 전원을 꾹꾹 누르더니, 곧 액상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수영은 전자담배의 배터리를 유심히 체크하고는 다시 롱 테이블의 건너편 지욱에게 시선을 두었다. 지욱은 가만히 바지 속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손을 빼자, 담뱃갑과 라이터가 같이 딸려 나왔다.

 

“저도 같이 피고 싶은데.”

 

지욱이 미소를 보이며 수영의 동의를 구하는 듯했다. 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욱은 수영의 앞으로 걸음을 느릿느릿 옮기며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지욱의 손에서 라이터의 부싯돌이 빠르게 회전하자 스파크가 튀며 불이 붙었고, 지욱은 담배의 끝에 다홍색의 불을 담아냈다. 수영도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공기 새는 소리가 조금 나더니 입에서 자욱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옛날에 저도 그거랑 똑같은 거 폈었어요. 오랜만이네.”

 

지욱은 갓 불이 붙은 담배를 괜스레 은색의 재떨이 위로 툭툭 털며, 반색하는 표정을 보였다.

 

“입문자한테 인기 있는 모델이라 하더라고요.”

 

수영의 표정은 전자담배 특유의 자욱한 안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틈 사이로는 지욱이 물고 있는 담배를 의식했다. 눈치 아닌 눈치에 지욱은 담배를 재떨이에 잠시 내려놓고 테이블 위의 담뱃갑을 잡곤 담뱃갑의 입구를 수영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한 대 드릴까요?”

 

지욱이 손에 쥐고 있는 담뱃갑은 방금 막 개봉한 듯 빈틈없이 스무 개비의 담배로 꽉꽉 차 있었다.

 

“괜찮아요.”

 

수영은 지욱의 능글맞은 태도가 은근히 거슬렸는지 말을 딱 잘랐다. 약간의 경계심을 품은 말투였다. 술기운 때문인지, 비루한 처지가 여유로운 지욱의 모습에 대조되어 수영의 마음을 괴롭게 한 건진 알 수 없었다. 수영은 일순간 얼어붙은 분위기에 지욱에게 괜히 죄스러운 감정이 일었다.

 

“아, 그러시구나.”

 

지욱은 그런 수영의 마음을 눈빛의 깊은 곳에서 건져 올렸다. 급하게 담뱃갑의 뚜껑을 닫고 수영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주머니 안으로 급히 넣는 제스처를 취하는 듯 보였는데, 보아하니 시늉은 아니었다. 수영은 이 사람 뭐지, 하며 의구심을 품다가도 그런 작은 마음이 내심 고마웠다. 수영은 지욱의 엉성한 존중을 지켜보며 낮게 웃었다.

 

“아뇨, 제가 너무 예민했죠. 죄송해요.”

 

지욱은 잠시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었다.

 

“제가 담배를 처음 손대기 시작한 게, 20살 딱 돼서였나? 민증이 나오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평소에 정말 피우고 싶었던 담배를 사서, 그 때 처음 연기를 몸 안으로 들였는데. 와, 기도가 캑,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기침 계속하고, 매캐한 향도 진짜 너무 별로였고…….”

 

지욱은 손을 코앞에서 휘휘 젓거나 목을 조르는 제스처를 요란히 재현했다. 갑자기 자신의 첫 경험을 이야기하는 오지랖이 넓은 지욱이, 수영은 흥미로운 듯 턱을 괴고 전자담배를 흡입해 수증기를 머금다 뱉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근데도 그 뒤로 전 쭉 담배에 손을 댔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끊었어요.

 중간에 그쪽이 피우던 그 전자담배 샀을 때도 그냥 전자담배 맛이 궁금해서 샀었는데.

 처음엔 솔직히 겉멋으로 피기도 했지만, 뭐랄까, 겉멋 때문만이 아니라-.”

 

지욱은 단어를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내어 말을 장식하다가 뚝 멎었다. 수영은 뒤에 이어질 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욱이 수영의 시선이 뻘쭘한 듯 멋쩍게 웃으며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 뒤로 시시한 몇 마디 농담 섞인 말들이 오갔다. 수영은 지욱에게서 첫 담배를 피웠던 자신의 실루엣을 추억에서 꺼내 어렴풋이 그려내고 있었다.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이내 잠잠해지자, 수영은 벽에 붙여진 금연구역 스티커를 곁눈질했다. 금연구역 내의 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흡연행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가끔 전자담배면 금연구역에서 피워도 된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

 

“그럴 리가요.” 지욱은 어느덧 불씨가 사그라든 담배를 비껴보곤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비비며 화답했다. 수영은 고개를 뒤로 넘기며 천장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흡연이 어쩌다 범죄가 된 걸까요.”

 

수영의 호흡은 깊어 보였다. 지욱은 담배를 욕망하는 수영을 바라보며, 금연해야만 한다고 쏘아붙이던 자신의 주변인들을 기억했다.

 

“왜 범죄에요. 피우고 싶으면 피우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수영은 웃으며 얘기했지만, 마음 한구석을 감추고 있었다. 남자는 담뱃갑을 잠시 뒤적이더니 이내 하얀 알몸을 드러낸 담배 한 개비를 수영에게 건네주었다.

 

“끊지 마세요. 담배. 너무 많이 피우진 마시고.”

 

가게 밖엔 어느덧 새벽이 걷어진 듯, 가로등의 나약한 불빛이 꺼지고, 자연광이 가게 안에서 열렬히 타고 있는 연초 두 개비를 조명하고 있었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시간도 늦었고.”

 

“아. 네. 계산해드릴게요.”

 

지욱도 수영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마감 시각을 시계가 아슬아슬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필터 부분만 짤막하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테이블에 잠시 걸쳐두었던 바텐더 유니폼을 공중에서 몇 번씩이나 털어냈다. 그 움직임에 맞춰 나풀나풀, 허공 위에서 춤추던 알 수 없는 연기가 빈 공간을 가득 메웠다. 수영이 카운터에 먼저 가서 파우치 안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서 있자, 지욱도 테이블의 건너편에서 빠져나와 자욱한 안개가 진 실내에서 수영이 남긴 자취를 따라갔다.

 

“제 생각엔.”

 

수영이 신용카드를 내밀며 동시에 말을 던졌다. 지욱은 여전히, 그녀의 맞은편에서 카드를 건네받은 뒤 단말기에 카드를 삽입하고는 수영의 말에 반응했다.

 

“전자담배도 담배죠. 그렇죠?”

 

“그럼요.” 좀 전의 자신처럼 멋쩍게 웃고 있는 수영에게 잠시 뜸 들이다가 밝게 화답했다. 수영의 주머니에 고스란히 들어간 스마트폰에는 수많은, 수영의 자질을 검문하던, 또는 심문하던, 어쩌면 본연 그대로인 질문이었던 문자내역들이 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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