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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다고, 찰나의 실수였다고. 좀더 노력해서 만회하겠다는 말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 같구나."

 

 

한 남자가 노란 빛의 백열전구만이 희미하게 드리우는 방에, 덩그러니 서있다.

백열전구는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남자의 주변과 횟빛의 벽만을 비추고 있다.

남자는 앞의 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찰나의 미동도 보이지 않은 채 입만 달싹였다.

남자는 고개를 내려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아니. 어쩌면 우리 전체를 통틀어서 말하는 거다. 우리는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고, 그것을 바로잡았다고 생각할 테지. 모두는 자기 잘못을 스스로마저도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수동적인 자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거야."

 

남자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빈번하게 주변 환경 등을 이유로 수동적이게 되어버렸다고, 그냥 쉽게 내뱉곤 해.

분명 깊은 속내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도 말이야. "

 

남자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손바닥을 벽과 맞대어 처량하기 짝이 없는 자세를 취했다. 

자세히 보니 벽은 도로공사를 할 때나 쓰이는 콘크리트 재질이었고, 빛이 닿을 듯 말 듯 한 바닥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층간소음처럼, 어디선가 묵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래. 능동적인 자세. 좋지 좋아. 행동하는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남자는 벽으로부터 손을 떼기 시작했다. 침묵이 얼마간 흘렀다.

 

남자는 빈약한 주먹을 단단한 벽에다가 두어 번 냅다 꽂기 시작했다. 

벽과 부딪힌 주먹 위로, 이내 피와 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손아귀를 더 세게 쥐었다.

 

"근데, 왜 자신감은 자만감으로 변질되고, 실행은 이기적인 행동이 되는거지?"

 

"나는 계속 생각했어. 그 곳에서 정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로, 생각을 멈추지 않았어."

 

스읍 ㅡ 후우.

 

남자는 떨리는 주먹을 부여잡고 숨을 골라내었다.

 

"답은. 언제나처럼 간단했어. 모순적이게도, 실수는 실패와 치환되는 개념이야. 결코 가까운 뜻이 아닌데도. 실수하게 되면, 실패자의 태도를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남들은 내 모든 삶에 '이기적인'이라는 족쇄를 채운다고.

그러니 자신 스스로도 자신감은 자만감으로 치부되고, 더욱이 행동을 조심하며, 더욱이 소극적이게 된다고."

 

병신같긴. 

 

남자는 중얼거렸다.

 

남자는 구석에 위치한, 녹이 발갛게 슨 싱크대 앞에 우뚝 섰다. 싱크대의 서랍을 당기자, 께름칙한 금속 소리가 진동했다.

서랍 안엔 여러 가지의 공구가 들어있었다. 남자는 그 안을 뒤적이다 이내 담뱃갑 하나를 꺼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그 누구도!" 

 

남자는 손에 힘을 주어 속이 빈 담뱃갑을 구겼다. 그의 손등 위로 울긋불긋한 핏줄이 솟아났다.

 

남자는 담뱃갑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곤 허공을 응시했다.

 

"그래서 말이야. 적어도 나는. 이 빌어먹을 악순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어. 우선 나부터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방법도 심플하게 말이야. 끼워 맞추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야.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실패는 도리어 추진력이 되고, 자만심은 나의 힘이 돼. 그 외의 모든 족쇄로부터 나는 해방이야. 이상적이지. 찰나의 실수, 잠깐의 자만심은 이 세계에서, 우리만이 용서할 수 있게 돼!"

 

난 실패하지 않았어. 난 실패한 적 없어.

 

말을 끝마친 남자는 허공에서 싱크대의 서랍으로 시선을 돌린 채 팔을 뻗어 무언가를 집었다. 은으로 도금된 망치였다. 

 

남자는 구석자리에서 벗어나, 방의 정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난 이걸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해. 아니. 어쩌면 실현의 그 이상일지도. 이 악순환의 단절을 시작하는 거야.

아아! 나는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방에서 메아리쳤다. 무언가 점액이 있는 것이 남자의 신발 밑굽에서부터 저항했다.

수명이 아슬아슬한 백열전구는 여전히 남자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남자의 표정은 그림자에 잠식되어 형체를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이 모든걸 실행하기 위해선 ㅡ "

 

여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자의 앞에 한 여자가 굵은 밧줄로 포박되어 있었다.

 

"그저 한 줌의 용기가 필요한 법이란다."

 

여자는 테이프로 짓눌린 입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저 힘 빠진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러니 ㅡ "

 

여자의 그림자 뒤로, 망치를 번쩍 든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망치를 든 손이 여자의 머리를 겨냥한 채, 약하게 떨었다. 

남자는 이제서야 그림자에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내 용기가 되어라."

 

그의 얼굴엣 웃음꽃이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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