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별을 닮은 너는
별을 닮은 너는
2023.11.04“저 세상은 어떤 곳일까?” 작은 아이가 섬광처럼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늘 같은 질문이었다. 저 세상은 어떤 곳인지. “저 곳은-“ 나는 운을 띄웠으나, 목이 순식간에 꽉 막혀 쉽사리 얘기가 나오질 않는다. 괜히 말해주기가 싫은 탓이었을까. 나는 옥색이 감도는 하늘과 그 뒤로 완벽히 검은 우주를 번갈아 보고는 홀로 손을 꽉 쥐었다. 손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게 느껴졌다. 다음 질문은 늘 하던 것들이겠지. 여기서 많이 멀 거냐는 둥,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냐는 둥, 늘 나누던 얘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성실히 답했다. “여기서 많이 멀어?” 나는 우두커니 별을 바라보았다.아이와 나는 단 몇 걸음이면 이 별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별 위에 앉아있었다. 검은 배경 속 먼지처럼 떠..
한 줌의 용기
한 줌의 용기
2023.10.29"잘못했다고, 찰나의 실수였다고. 좀더 노력해서 만회하겠다는 말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 같구나." 한 남자가 노란 빛의 백열전구만이 희미하게 드리우는 방에, 덩그러니 서있다. 백열전구는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남자의 주변과 횟빛의 벽만을 비추고 있다. 남자는 앞의 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찰나의 미동도 보이지 않은 채 입만 달싹였다. 남자는 고개를 내려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아니. 어쩌면 우리 전체를 통틀어서 말하는 거다. 우리는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고, 그것을 바로잡았다고 생각할 테지. 모두는 자기 잘못을 스스로마저도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수동적인 자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거야." 남자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빈번하게 주변 환경 등을 이유로 수동적..
어떤 이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어떤 이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2023.10.27한 노부부의 평화, 오후 네시부터 시작되는 악몽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만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 아멜리 노통브, 中 약 40년동안 고등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친 강사 에밀과 그의 아내 쥘리에트는, 외딴 시골 마을에서 결혼 이후 꿈꿔왔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창문 너머의 외로운 풍경, 벽난로, 그리고 그 앞에서 침묵을 즐기는 에밀과 쥘리에트까지. 에밀과 쥘리에트에게 에서 ..
전자담배
전자담배
2023.10.21자정은 진작 지나친 듯한 깊은 밤이었다. 술집 거리의 경계선 즈음에 자리 잡은 한 라운지 바에서, 달큰하고 진득한 향이 바람을 타고 출입문 너머까지 퍼져나갔다. 꽤 잡스러웠던 소음들도 일렬로 길게 늘어진 테이블에서 출입문으로 사람들과 함께 사그라들고, 그림자를 한 꺼풀 벗어낸 로파이 재즈음악이 흘러나왔다. 가게의 벽면 통유리창 너머엔 홀로 선 가로등이 쉬지 않고 점멸하며 빛났다. 가늘게 들어오는 빛에 의존해 바 테이블의 끝자락에 앉은 수영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을 뒤로 젖히며, 절반 정도 채워진 술잔을 낮은 높이에서 천천히 두어 번 휘저었다. 그러자 다시금 올라오는 달큰한 향이 수영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상기인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오나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는 거리가 멀어……’ 수..
휴가
휴가
2023.05.19매일 똑같은 날은 내일이면 잠시 잊을 수 있게 된다. 음침하고 우울함의 사이에 조그맣게 끼워진 소소한 자유라는 건 유독 눈에 띄게 되기 마련이다. 짧은 휴가를 가겠다고 정해놓은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조금 전엔 이미 짐을 다 꾸려놓은 상태였고, 내 침대의 주변으로는 그것을 증명하려는 듯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매번 같은 하루의 반복에 염증을 느끼는 나는 이상하게도 좀체 일어서지 못했다. 삶에 치이며 허둥대던 옛의 기억처럼. 며칠동안 미뤄두었던 설거지가 갑작스레 생각이 나서, 두 발을 이끌어 아무렇게나 던져둔 옷들을 이리저리 치워 거실까지 작은 길을 만들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설거지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음식물이 묻어 더욱이 바랜 듯한 그릇들과 양은냄비의 사이로 서너마리의 파리들이 곡예비행을 선..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2023.05.14어머니께서 별세하셨다고 들은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점점 밀려드는 업무에 정신없는 나날을 헤쳐나갈 때, 경찰서에서 오는 전화를 받을 여념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겨우 업무를 끝내고 소파에 누워 담배 한 대를 꺼낼 즈음 두 번째 전화가 울렸다. 스피커 너머의 남자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니는 외로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간단히 대답만 건네는 내 입에선 매연이 피어올랐다. 남자는 내가 해야 할 간단한 절차 등을 서술했고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집 밖을 거닐고 있었다. 근처의 가까운 벤치를 찾아 멍하니 앞을 쳐다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긴 시간을 홀로 보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그만큼의 침묵을 몰래 약속했었던..
노을
노을
2023.05.10끝없이 퍼져나갈 것만 같은 노을이 다시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내 앞에 마주보고 있다. 창문의 언저리에서 바라보고 있던 나, 그리고 그 뒤로는 점점 길어지는 노을만큼의 깊어지는 그림자를 뒤꽁무니에 단 채 창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 시간대가 되면 낡은 반지하의 방 안에도 아무렇지 않게, 붉게 달아오른 햇빛이 어김없이 방문한다. 항상 그럴 때마다 나는 그닥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해야만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일 집 안을 드나드는 노을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일매일 아름다웠다. 창문의 건너로 적당한 거리, 태양을 감싸고 있는 조그마한 구름들을 관찰했다. 그것은 속절없이 노을에게 난도질당한 자국의 사이로 붉은 피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인..